탄소를 줄이자는 정책이 왜 내 장바구니 물가에 영향을 미칠까?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정책 중 하나인 탄소배출권 제도는 얼핏 보면 산업계와 정부 간의 거래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며, 우리의 전기요금, 식료품 가격, 교통비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지금부터 탄소배출권의 구조가 어떻게 우리의 일상적 생활비로 이어지는지 차근히 분석해 보겠습니다.
1. 탄소배출권 시장이란 무엇인가: 산업 간 배출량을 사고파는 구조
탄소배출권(Carbon Emission Allowance)은 국가나 국제기구가 기업에 일정량의 이산화탄소 배출 한도를 부여하고, 초과 배출이 예상되는 기업은 남는 기업으로부터 배출권을 구매하는 시장 기반 제도입니다. 이는 대표적인 ‘탄소 거래제(ETS, Emissions Trading System)’로, 유럽연합(EU ETS)이나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K-ETS)처럼 제도화되어 운용됩니다.
한국의 경우 2015년부터 K-ETS를 시행하고 있으며, 발전,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항공 등 탄소 다배출 업종이 중심입니다. 기업은 정부로부터 일정량의 무상 할당을 받지만, 초과 배출 시 시장에서 배출권을 구입해야 합니다. 이때 배출권 가격은 수요-공급에 따라 매일 변동되며, 최근에는 1톤당 3만~4만 원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비용이 단지 산업 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기업이 부담한 탄소 비용은 결국 제품 가격에 반영되며, 소비자는 이를 간접적으로 지불하게 됩니다.
2. 제조·에너지 비용 상승이 생활물가로 이어지는 경로
탄소배출권 비용이 가장 먼저 반영되는 분야는 전력 요금입니다. 한국전력과 민간 발전사는 석탄·LNG 발전 시 배출되는 온실가스에 대해 막대한 탄소배출권 비용을 부담합니다. 이 비용은 전력도매가에 반영되고, 전기요금 조정 시 주요 변수로 작용합니다. 특히 2022~2023년의 전기요금 인상은 연료비뿐 아니라 배출권 비용 상승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였습니다.
두 번째로는 제조업 원가입니다.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은 생산 공정상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구조라 필연적으로 배출권을 매입해야 하며, 이로 인해 제품 단가가 상승합니다. 이는 곧 건설자재, 포장재, 운송 연료 등의 비용 인상으로 이어져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 가격에 연쇄 영향을 줍니다.
세 번째는 유통 및 식료품 가격입니다. 대형 유통업체나 식품 가공업체도 냉장·냉동, 수송, 포장 등에 다량의 에너지를 사용하며 간접적으로 탄소 비용을 부담하게 됩니다. 이 비용이 최종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최근 유럽에서는 육류나 유제품에 ‘탄소세’ 개념을 반영한 가격 인상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향후 탄소 라벨링이나 가격 전가가 점차 명시화될 전망입니다.
3. 탄소비용은 누가 부담하나: 전가 구조 속 소비자 체감 분석
기업이 부담하는 탄소배출권 비용은 대부분 제품 단가 인상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됩니다. 예를 들어, 석유화학 기업이 플라스틱 원재료 가격을 올리면, 이는 포장재-완제품-소매상품에 이르기까지 가격 상승을 유발합니다. 소비자는 명확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생활비가 오른다’는 막연한 부담만 체감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탄소배출권 제도는 소득 역진적 성격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전기요금 인상이라도 소득이 낮은 계층이 더 큰 비중으로 부담하게 되며, 교통비나 식료품 가격 인상도 취약계층에 더 큰 타격을 줍니다. 따라서 국제기구들은 탄소세나 탄소배출권과 같은 기후 정책을 도입할 때 반드시 ‘보완적 재분배 정책’을 함께 설계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이러한 역진성 보완을 위해 ‘기후대응기금’을 조성해 탄소비용 일부를 저소득층 지원이나 친환경 전환에 재투자하고자 하지만, 실제 체감되는 효과는 아직 미미한 수준입니다. 정책 간 연계와 체계적인 재정 배분 없이는 탄소비용의 생활물가 전가는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 기후정책의 비용은 모두의 몫, 그러나 설계가 관건
탄소배출권은 단순히 기업 간의 무역 거래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기후대응’이라는 대가를 분담하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그 부담이 명확하게 설계되지 않으면 생활물가 상승으로 둔갑해 불만을 증폭시킨다는 점입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배출권 제도는 필요하지만, 그 비용을 누가, 어떻게, 얼마나 부담할지를 명확히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배출권 가격이 오를수록 이를 생활비에 반영하는 ‘전가 구조’가 체계적으로 분석되고,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기후정책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닙니다. 가계 경제, 산업 구조, 세대 간 형평성까지 아우르는 총체적 문제이며, 탄소배출권은 그 민감한 연결고리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