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한국 가계의 저축률은 왜 낮아졌나

by 봄스푼 2025. 4. 26.

“소득이 늘어도 남는 게 없다.” 한국의 많은 가구가 저축은커녕 매달 빠듯한 지출을 감당하느라 허덕이고 있습니다. 통계청과 한국은행의 자료를 보면 한국 가계의 순저축률은 지난 수년간 감소세를 보였고, 특히 중산층 이하 소득 계층의 실질 저축 여력은 크게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 가계의 저축률은 왜 낮아졌나?
한국 가계의 저축률은 왜 낮아졌나

이 글에서는 단순히 '돈을 안 모으는' 현상이 아닌, 왜 '못 모으는' 구조가 되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가계의 소득-지출 구조, 부채 문제, 그리고 금융 환경의 변화를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1. 늘어난 필수지출, 줄어든 여윳돈: 저축을 막는 일상 비용의 압박

가계의 저축률이 낮아지는 데 가장 큰 원인은 소득보다 빠르게 증가한 지출 구조에 있습니다. 대표적인 필수지출 항목인 주거비, 교육비, 식비, 통신비 등이 소득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고 있으며, 특히 무주택 가구의 주거비 부담은 해가 갈수록 가중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중위소득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260만 원 수준인데, 이 중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22%에 달합니다. 여기에 교육비, 교통비, 보험료 등을 더하면 실제로 남는 돈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특히 자녀를 둔 가구에서는 사교육비가 저축 여력을 크게 제한합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연간 사교육비는 평균 350만 원 이상으로, 자녀 수가 늘어날수록 부담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저축을 미루는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구조적 결과'에 가깝습니다.

더욱이 최근 물가 상승률이 정점을 지나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료품·외식 등 생활 밀착형 물가는 여전히 체감 상승률이 높아 가계 부담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지출 항목들이 커질수록, 가계는 예비비나 장기 저축보다는 '현금흐름 유지'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2. 빚을 갚느라 못 하는 저축: 가계부채가 소득을 삼키다

한국 가계 저축률 감소의 또 다른 핵심 원인은 가계부채의 구조적 증가입니다. 2024년 기준 가계부채 총액은 약 1,860조 원으로 GDP 대비 약 101%에 육박하고 있으며, 이는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입니다.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학자금 대출 등 다양한 형태의 빚이 가계의 순저축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특히 금리 인상기의 영향을 직접 받은 것은 이자 부담입니다. 기준금리가 1%대였던 시기와 비교하면 현재 대출금리는 평균 3~4%대로 상승했으며, 이에 따라 가계가 부담해야 하는 연간 이자 총액도 약 60조 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처럼 '저축 대신 빚을 갚아야 하는 구조'는 단기 유동성뿐 아니라 중장기 자산 형성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또한, 빚을 진 상태에서의 소비는 일종의 선지출 개념이기 때문에, 향후 소득 중 상당 부분이 부채 상환에 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한국은행은 2023년 보고서에서 “가계의 순자산은 증가했지만, 이는 부동산 평가 차익 때문이며 실질 유동자산은 정체 또는 감소세”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겉으로 보기엔 자산이 늘어난 것처럼 보여도 현금 흐름은 점점 타이트해지고 있는 셈입니다.

3. 저금리의 끝, 금융환경 변화가 저축 습관을 바꾸다

한편, 저축률 감소는 거시금융 환경의 변화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장기 저금리 국면에 접어들었고, 한국 역시 오랫동안 기준금리를 낮게 유지해 왔습니다. 이로 인해 예금·적금 중심의 전통적 저축 방식은 수익률 측면에서 매력도를 잃게 되었고, 많은 소비자들이 저축보다는 소비나 투자로 방향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소비가 곧 경험’이 되는 시대적 전환 역시 한몫합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미래를 위한 저축'보다는 '지금의 만족'을 중시하는 소비 성향이 강해졌으며, 이는 저축 감소의 심리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태도 문제라기보다는 경제 시스템이 장기 저축보다 단기 소비에 유리한 구조로 진화하고 있음을 반영합니다.

최근 기준금리 인상으로 다시 저축금리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실질금리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또한 부동산·주식 등 자산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저축의 상대적 매력도는 과거에 비해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요컨대 저축은 재무적 전략이 아니라, 구조적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한 선택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저축률'은 숫자가 아니라 구조다

한국 가계의 저축률 저하는 단순한 소비 습관의 변화로만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소득 대비 지출의 비정상적 팽창, 빚을 짊어진 채 버티는 생활, 그리고 금융 환경의 구조적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즉, 이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경제 구조의 반영’입니다.

정부의 정책 또한 저축 유인을 회복시킬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청년층과 중산층 이하 계층의 실질 저축 여력을 높이기 위해선 주거비, 교육비 등 필수지출 항목에 대한 공공부담 확대와 동시에, 부채 부담 완화 및 장기 저축에 대한 세제 혜택이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못하는 저축'을 '할 수 있는 저축'으로 전환하기 위한 환경 조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