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유연근무 시대, 도시는 어떻게 변할까 - 부동산·교통·지역경제 파급효과

by 봄스푼 2025. 6. 4.

출퇴근 없는 삶이 당연해진 시대, 우리는 도시를 어떻게 다시 바라봐야 할까?

수십 년간 도시는 경제활동의 중심지이자, 사람들의 삶이 조직되는 가장 핵심적인 공간이었습니다. 거대한 오피스 빌딩과 몰려드는 출근 인파, 이를 뒷받침하는 교통 인프라와 상권, 주거지까지 모든 것이 일터 중심의 일상에 맞춰 설계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급속히 확산된 원격근무, 재택근무, 하이브리드 근무제 등 유연근무 방식은 이 같은 도시의 기본 전제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2020년 이후 많은 기업이 위기 대응의 일환으로 재택근무를 도입했지만, 이는 단지 일시적인 변화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디지털 협업 도구의 발전과 기업의 업무 효율성 유지 경험은 ‘유연근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하나의 표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특히 IT, 콘텐츠, 마케팅, 컨설팅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중심으로 유연근무제가 정착되면서, 과거 '직장 근처에 살아야 한다'는 주거·이동의 공식도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도심 오피스 수요 감소, 대중교통 이용률 저하, 주거지 분산, 지역 상권의 구조적 변화 등 도시를 둘러싼 다양한 요소들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경제 생태계와 인프라 배치, 부동산 가치, 지역 경제까지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연근무의 확산이 부동산 시장과 교통 체계, 그리고 지역경제에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을까요?

유연근무 시대, 도시는 어떻게 변할까
유연근무 시대, 도시는 어떻게 변할까


이 글에서는 유연근무 시대가 한국 도시 구조에 미치는 세 가지 주요 파급효과, 부동산 수요 구조의 재편, 교통 인프라와 운영 전략의 변화, 지역경제와 소상공인 생태계의 전환을 중심으로 구조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원격근무가 부동산 시장에 미친 실질적 변화

코로나19 팬데믹 직후부터 급격히 확산된 재택근무는 도심 오피스 수요의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서울 강남, 여의도, 종로 등 주요 업무지구의 공실률은 단기적으로 상승했고, 일부 대기업은 사옥을 매각하거나 소규모 거점 오피스로 전환하는 등의 구조 조정을 단행했습니다. 이 흐름은 2024년 이후에도 일정 수준 유지되며, 기업의 오피스 수요는 '거점+유연' 모델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이는 부동산 시장 전반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첫째, 고가 오피스빌딩 수요가 감소하면서 상업용 부동산의 수익률이 하락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소형 빌딩의 공실 문제는 심각하며, 공유오피스나 스타트업 공간으로의 전환이 시도되고 있지만 수익성 회복은 더딘 상황입니다.

둘째, 주거 공간의 수요는 다변화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직장 접근성이 최우선 고려사항이었다면, 이제는 업무와 삶을 병행할 수 있는 '홈오피스형 주거 공간'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수도권 외곽, 충청·강원 지역의 전원주택이나 저밀도 주거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며, 실거주 목적의 1인 가구·젊은 부부 중심의 수요 이동이 관찰됩니다.

마지막으로, 기업 자체도 부동산을 자산으로 보유하기보다는 비용 최적화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어, 부동산 시장의 수요 구조 자체가 재편되는 흐름입니다.

2. 교통 수요와 인프라 투자 방향의 변화

원격근무의 확산은 출퇴근이라는 전통적인 교통 수요의 패턴을 바꾸고 있습니다. 특히 대도시 중심의 출퇴근 시간 혼잡도가 감소함에 따라, 대중교통 운영 수익과 배차 전략에 변화가 불가피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경우 지하철 혼잡률이 2020년 대비 2024년에는 약 15~20%가량 감소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출퇴근 중심의 정시 배차 체계에서 벗어나, 탄력 배차 및 생활 밀착형 교통 서비스로 전환되는 흐름입니다. 예를 들어 경기도나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출퇴근 인구 감소에 따라 버스 노선 재편과 마을버스 중심 운영 강화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교통 인프라 투자 우선순위의 재조정입니다. 대규모 광역철도나 혼잡 해소형 SOC 투자보다, 지역 내 이동 수요를 반영한 소규모 교통 인프라(예: BRT, 순환버스, 자율주행 셔틀)에 대한 투자 비중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원격근무 확산에 따른 이동 수요의 비도심화 현상에 대응하는 조치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통 변화는 단순한 운영 효율화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출퇴근 중심의 일상 구조가 흔들리면서, 교통 역시 '직장-집' 간의 단선 구조가 아닌, 복합적 이동 경로와 지역 중심 생활권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재구성될 필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3. 지역경제와 소상공인의 재편, 그리고 기회의 확장

유연근무제의 정착은 도심에 집중된 소비 구조를 약화시키고, 동시에 지역 기반 소비로의 분산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역경제, 특히 소상공인들에게는 양날의 검입니다.

도심의 경우, 출퇴근 인구 감소로 인한 유동 인구 감소는 식음료 업종, 편의점, 헬스장, 이·미용업 등 생활밀착형 업종에 직격탄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서울의 대표 업무지구에서는 코로나 이후 2023년까지 도심 상권 내 폐업률이 15% 이상 증가한 반면, 외곽 주거지역이나 위성도시 상권은 오히려 매출 증가를 보인 바 있습니다.

반면 원격근무를 계기로 지방 이주 및 거주 환경 개선이 추진되면서, 지역 소도시나 농촌 지역에서는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라남도 나주, 강원도 강릉, 충북 제천 등에서는 디지털 노마드나 리모트 워커를 위한 거점 오피스와 공동주거 공간을 조성하고, 로컬창업과 연계한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은 정책적,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입니다. 수도권 인프라에 집중된 투자와 행정자원, 교육·의료 시설의 지역 격차를 해소하지 않는다면 원격근무가 지역 경제 재생의 동력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지역 기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구 유입이 아닌, '디지털 기반의 고부가가치 일자리' 유치가 병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디지털 인프라와 생활기반 확충이 절실합니다.

결국 유연근무의 확산은 도시의 기능과 구조, 경제 흐름까지 근본적으로 재설계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단지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차원을 넘어서, 공간 정책과 복지, 균형 발전 전략 전체의 재구성으로 이어져야 할 과제입니다.

 

도시의 미래는 ‘일하는 방식’에서 다시 그려지고 있다

유연근무 시대는 단순히 직장인의 삶에 여유를 주는 제도적 변화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도시의 구조, 부동산의 수요, 교통 인프라, 지역경제의 순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물리적·경제적 틀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거대한 변곡점’이 되고 있습니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도시는 일터와 주거가 명확히 분리되고, 중심업무지구(CBD)를 중심으로 고밀도의 경제활동이 집중되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원격근무 확산과 디지털 협업의 보편화는 이러한 구조를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더 이상 모든 사람들이 하루에 두 번 출퇴근을 감수하며 도심으로 몰려들 필요가 없고, 직장은 특정 공간에 고정되지 않아도 됩니다. 이는 교통수요의 분산, 오피스 부동산 시장의 축소, 주거 선택의 다양화 등 도시 전반의 기능과 역할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경제의 관점에서도, 유연근무는 수도권 집중 구조를 일부 완화하고 지방 중소도시나 농촌 지역에 새로운 경제적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도시 간 불균형 문제를 일부 해소하면서 새로운 ‘분산형 경제 생태계’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모든 계층과 지역에 균등하게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니며, 정책적 대응과 인프라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새로운 양극화를 초래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결국 유연근무는 단지 ‘일하는 시간의 유연화’가 아니라, 도시라는 물리적 공간과 그 안의 사람, 산업, 소비가 재배열되는 과정입니다. 향후 도시 정책과 부동산, 교통계획, 지역균형발전 전략은 이와 같은 새로운 흐름을 고려한 구조적 설계가 요구됩니다. 일하는 방식이 변한 만큼, 도시에 대한 상상력도 새롭게 그려져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