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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 사회에서 노동시간 유연성의 경제학적 역할

by 봄스푼 2025. 6. 6.

노동시간의 유연성이 단순한 근무방식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령화가 심화되는 사회에서 경제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2025년이면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는 생산성과 소비, 복지재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며, 그 중심에 ‘노동시장’이 있다. 과거에는 은퇴와 함께 경제활동이 종료되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은퇴 이후에도 일정한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노동의 연속성’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노동시간 유연성’이 있다. 고정된 근로시간과 정규직 중심의 고용 구조는 더 이상 고령화 사회에 적합하지 않다. 시간제 근무, 파트타임, 프로젝트 단위의 고용 등 유연한 근로 형태가 고령층을 노동시장에 다시 유입시키는 열쇠로 떠오르고 있다.

초고령 사회에서 노동시간 유연성의 경제학적 역할
초고령 사회에서 노동시간 유연성의 경제학적 역할

본 글에서는 고령층의 노동참여 확대, 시간제 일자리의 구조, 은퇴 이후 경제활동 모델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노동시간 유연성의 경제학적 역할을 짚어본다.

1. 고령층 노동 참여의 필요성과 유연성의 접점

고령층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는 단순히 개인의 경제적 필요를 넘어서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과도 직결된다. 연금제도의 재정 불안, 생산가능인구 감소, 복지 수요 증가라는 삼중고 속에서 고령층이 일정 기간 경제활동을 지속하는 것은 재정 안정성과 경제성장률 유지의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실제로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60세 이상 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아직도 상당수는 자발적인 은퇴보다는 일자리 부족, 건강문제, 근무시간의 경직성 등으로 인해 노동시장에서 이탈한다. 특히 정년퇴직 이후에도 일하고 싶다는 수요는 높은 반면,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일자리의 유형은 한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시간 유연성은 고령층의 노동 참여를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주요 조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풀타임 근무는 체력적으로 부담이 크고, 건강 관리에도 제약을 줄 수 있다. 반면, 주 3일 근무, 하루 4시간 파트타임 등은 고령층의 생활 리듬에 맞으면서도 일정한 소득을 확보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이 된다. 또한 고령층은 단순 노동 뿐 아니라 경력 기반의 전문 지식, 멘토링, 컨설팅 등으로도 기여할 수 있어, 이와 같은 고부가가치 파트타임 모델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노동시장 유연화는 단순한 근로시간 조정이 아니라, 고령층의 경력 전환(reskilling)과 연계되어야 한다. 디지털 전환 속에서 고령층이 시대 흐름에 맞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직업 훈련,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병행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고령층의 고용 지속성을 높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2. 시간제 일자리와 경제 구조의 변화

시간제 일자리는 더 이상 단순한 ‘보조적 노동’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핵심 변수다. 특히 노동력 공급의 구조가 빠르게 변하는 고령화 사회에서 시간제 근무는 지속 가능한 노동 시장을 만드는 기반이 된다. 하지만 한국의 시간제 일자리 비중은 OECD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독일(약 26%), 네덜란드(45%) 등은 시간제 근무를 제도화하고, 고령층이 안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법적·재정적 장치를 마련해왔다.

반면 한국의 경우, 시간제 일자리는 대체로 비정규직, 저임금, 낮은 복지 수준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는 고령층에게 불리한 조건을 제공하며, 노동시장 참여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시간제 일자리가 단순한 ‘알바’ 개념이 아니라, 전문성 기반의 ‘세컨드 커리어’로 재설계되어야 하는 이유다.

특히 고령층이 시간제 노동을 수행할 수 있는 분야는 단순 반복작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교육, 상담, 의료보조, 창업 멘토링, 사회복지, 문화해설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들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중간 지원 플랫폼, 지자체 기반 일자리 매칭 시스템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한, 노동법과 사회보험 체계 역시 시간제 노동에 적합하게 개편되어야 한다. 현재는 일정 근로시간 이상이 되어야만 고용보험,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의 적용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고령층의 시간제 노동을 위축시키는 제도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소 근로시간 요건을 낮추거나, ‘노동시간 기반의 사회보험’ 모델로 전환하는 등의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나아가 시간제 일자리는 전체 산업 구조의 효율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특정 프로젝트, 성수기, 파트타임 운영이 가능한 부서 등에서 효율적인 인력 운용이 가능하며, 고정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노동자와 기업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고령화 대응의 핵심이 된다.

3. 은퇴 이후 경제활동 모델의 재정립

은퇴 후 삶은 더 이상 경제적 생산성과 단절된 시기로 볼 수 없다. 기대수명이 85세를 넘는 시대에 60세 전후의 은퇴는 지나치게 이르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소득 공백과 노후빈곤 문제는 심화되고 있다. 실질적인 은퇴 이후 경제활동 모델이 필요하다.

이 모델은 ‘노동 유연성’과 ‘사회적 가치 창출’을 동시에 담아야 한다. 고령층이 반드시 ‘임금 노동’만을 통해 경제활동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기업, 비영리 조직, 공공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며 일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해외 사례를 보면, 일본의 ‘실버 인재뱅크’ 모델이 주목받는다.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되어 고령자 일자리를 발굴하고, 맞춤형 근무시간, 적정 임금, 사회보험 연계 등을 지원한다. 이 시스템은 고령층의 사회 참여와 경제적 자립을 동시에 가능케 하며,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또한, 은퇴 이후 자영업이나 소규모 창업을 선택하는 사례도 많다. 문제는 이들이 체계적 경영교육이나 자금 지원 없이 시장에 진입하게 되면서 실패 확률이 높고, 다시 빈곤의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이다. 은퇴 후 창업 모델 역시 유연노동의 일부로 보고, 정책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더 나아가, 디지털 전환 시대에는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경제활동도 고령층에게 유의미한 기회가 된다. 콘텐츠 제작, 온라인 교육, 전자상거래 지원 등 디지털 친화형 재교육과 연결해 고령층의 새로운 경제활동 모델이 다양화될 수 있다.

노동 유연성은 고령화 시대의 경제 생존 전략

초고령 사회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도달한 현실이며, 이에 대한 경제적 대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노동시간 유연성’이다. 이는 단지 고령층의 생계 문제를 넘어서, 생산성과 소비, 복지, 사회 통합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열쇠다.

고령층의 노동시장 재진입은 연금 의존도를 낮추고, 소비 여력을 유지하며, 건강한 사회 참여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시간제 일자리의 질적 향상, 사회보험의 제도 개선, 경력 전환 교육 등 입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기업은 고령 노동을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인식해야 한다. 고경력자의 노하우는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요소가 될 수 있으며, 다양한 고용 형태와 융합되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도 있다.

노동 유연성은 단순한 고용 유연화를 넘어, 고령화 사회 전체를 지탱할 수 있는 경제적 축이다.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얼마나 오래 일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일하며, 어떤 구조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것인가’다. 고령화와 유연노동의 조화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