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란 꼭 증권 계좌를 통해 이루어져야 할까? MZ세대는 지금, 소비의 탈을 쓴 투자로 자산을 굴리고 있다.
한정판 스니커즈, 인기 아이돌의 콘서트 티켓, 고급 시계, 레고, 캠핑 장비, 그리고 한정판 굿즈까지. 요즘 MZ세대는 ‘리셀(Resell)’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소비와 투자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주식이나 펀드에 돈을 넣기보다는, 희소한 상품을 사서 되파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셈입니다.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이는 MZ세대가 가진 자산 축적 전략의 방향성과 투자에 대한 심리적 변화, 그리고 기존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 등을 반영하는 현상입니다.
이 글에서는 왜 MZ세대가 리셀 시장에 주목하는지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그 배경과 파급 효과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소비인가 투자인가: ‘리셀’이 바꾼 자산의 개념
MZ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자랐고, 경제적으로는 고물가, 저성장, 저금리, 자산 불균형이라는 다층적 위기 속에서 성인기를 맞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보장된 수익’도, ‘안정적인 직장’도 드물고, 과거 부모 세대처럼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경로가 제한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리셀은 현실적인 대안이 됩니다. 한정판 제품은 출시와 동시에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경우가 많으며,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거래도 간편합니다. 예컨대 인기 브랜드 스니커즈의 경우, 구매가가 20만 원이었더라도 거래 플랫폼에서는 수일 내에 2~3배의 가격에 되팔 수 있습니다. 이는 단기 수익률 측면에서 전통 금융상품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보이기도 합니다.
‘사서 쓴다’가 아니라 ‘사서 굴린다’는 개념이 MZ세대의 소비 관념을 지배하면서, 단순한 소비가 아닌 ‘전략적 지출’로 리셀을 정의하는 현상이 보입니다.
또한 중고거래에 익숙한 디지털 플랫폼 환경이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합니다. 번개장터, 크림(KREAM), 당근마켓, 셀잇 등의 플랫폼은 정품 인증, 자동 결제, 배송 대행 등 리셀을 위한 인프라를 제공하며, 소비자를 곧 ‘투자자’로 만드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2. 주식보다 물건? ‘믿을 수 있는 가치’에 대한 심리
전통적인 자산 투자 수단인 주식과 리셀 사이에서 MZ세대가 후자를 선택하는 배경에는 ‘신뢰’의 문제가 자리합니다. 많은 MZ세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전통 금융에 거리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투명성 부족: 주식시장은 기관, 대주주, 작전세력 등의 영향력이 크고, 개인 투자자는 정보 비대칭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 시장 불확실성: 경기 변동성, 글로벌 긴장 상황 등 외생 변수에 따라 수익률이 좌우됩니다.
- 심리적 거리감: 숫자와 차트로 표현되는 자산은 직관적이지 않으며, 특히 투자 초심자에겐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면 리셀 상품은 훨씬 직관적입니다. 실물자산을 보유한다는 점에서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가치 상승의 근거도 명확합니다. 예컨대 유명 브랜드의 협업 제품, 한정판, 생산 중단 모델 등은 수요 대비 공급이 적기 때문에 가치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가 직접 고르고, 보관하고, 팔 수 있는 자산”이라는 정체성은 MZ세대에게 ‘신뢰할 수 있는 투자수단’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심리적 안정감과 실물 자산에 대한 직접 통제는 전통 금융상품과 차별화된 리셀의 강점입니다.
3. 리셀 시장은 하나의 ‘신(新) 자산 시장’이 될 수 있을까?
리셀은 단순한 유행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투자 대안으로의 위상도 커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인 Cowen은 2025년까지 전 세계 리셀 시장 규모가 64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번개장터, KREAM 등의 플랫폼을 중심으로 수천억 원 단위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금융업계도 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일부 증권사는 리셀 시장 동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하거나,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은행권에서는 ‘리셀 자산’을 기반으로 하는 대안적 신용평가 모델이나 담보 시스템에 대한 연구도 시작되고 있습니다.
물론 리셀 시장은 여전히 다음과 같은 위험요소를 안고 있습니다:
- 정품 여부 확인의 한계
- 플랫폼별 수수료 및 거래세
- 시장 유행 변화에 따른 가격 변동성
- 보관 및 파손 리스크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와 투자의 경계를 흐리는 이 흐름은 앞으로도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경험’과 ‘자기 취향’을 중시하는 MZ세대에게는 자산이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자신만의 가치와 연결되는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 새로운 투자 세대, 새로운 시장의 등장
MZ세대가 리셀을 선택하는 이유는 단순한 수익 추구만은 아닙니다. 이는 기존 금융시장의 불투명성과 느슨한 신뢰를 보완하고, 자신이 직접 판단하고 통제할 수 있는 실물 자산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자산 축적’을 시도하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리셀 시장은 금융, 소비, 문화가 결합된 새로운 복합 산업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투자자, 기업, 정책 입안자 모두 이 흐름을 단순한 유행이 아닌 ‘구조적 변화’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리셀은 MZ세대에게 있어 소비가 아니며, 새로운 형태의 투자입니다. 주식과 채권만이 자산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나이키 덩크, 샤넬 클래식백, 블랙핑크 콘서트 티켓이 자산이 되는 시대입니다.